Match Box Edition 1. 2인조 X

전시기간2022.08.23 ~ 09.18
주최/기획연수문화재단 · 아트플러그 연수
관람시간화-일 / 10:00~18:00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 휴관(월요일, 법정 공휴일)
장소아트플러그 연수(연수구 청량로 101번길 33)
관람료무료
문의처연수문화재단 예술진흥팀 (070-4466-1665)

올해로 운영 두 해 째를 맞는 아트플러그 연수의 기획전에 초청 큐레이터로 합류하게 되면서 가장 처음 고심했던 점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만 가능한 전시를 꾸려보자는 것이었고, 동시에 레지던시가 갖고 있는 한계점 혹은 어쩔 수 없는 폐쇄성을 적극적으로 돌파하자는 것이었다.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는 드물게 몇 차례의 레지던시 입주와 기획 경험이 있고, 작가 조사와 작품 실견을 위해 매해 여러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방문해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미술전시 기획과는 구분되는 나름의 문제의식과 해결 지점을 정해놓고 출발한 셈이다.

프로그램의 기획은 퍽 단순하고 느슨하게, 그러나 과감한 아이디어로부터 개진되었다. 레지던시에 소속된 창작자들이 호스트가 되어 바깥에서 새로운 파트너 작가들을 초청하는 것이 이번 전시 〈Match Box 1. “2인조 X”〉의 기획 동력이자, 실체적 과정, 그리고 최종적 결과물이 되었으면 했다. 상호 경쟁이나 비교우위를 통한 결정이기보다는 한없이 다정한 초대이기를 원했던 마음이 얼마만큼 실현되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기성 기획자의 창의성이 축소될수록 예술 행정의 묘미가 살아나고, 창작자들의 자율적 전시 운용이 가능해지지 않을까하는 낙관주의와 귀한 손님을 모시는 긴장감을 부여잡으며 전시 채비를 해나가는 태도가 함께했던 이례적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프로그램의 제목이 다소 비대해진 연유와 각각의 함의를 설명하며 관객들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의 과거 작업 경향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소개전시와 일 년 간의 창작 흐름을 보고하는 성과 전시로 연결되는 타임라인 안에 슬쩍 삽입된 것 같은 이번 프로그램은 입주자 주도의 기획과 비평 수행, 기관 바깥의 작가들과의 협업 제작을 생성해내는 과정이 되었다. “매치박스(Match Box)”라는 표제는 이러한 실천이 한동안(어쩌면 매 해) 지속되기를 바라며 제안된 것이다. 매치(Match)라는 단어는 상당히 중의적이어서, ‘매치박스’가 여러 개의 성냥이 가득 들어 있는 잠재적 화기 혹은 ‘도화선’이 될 지, 두 라이벌 선수 간의 경합이 이뤄지는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될 지, 서로의 감각과 태도를 존중하는 ‘어울림’이 각별한 일이 될 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란 오직 실천 과정 속에서 각각의 주체가 느끼는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경험일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올해 다섯 명의 아트 플러그 작가가 제안한 다섯 개의 기획이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내용적 요소가 되었고, 외부에서 초대된 다섯 작가들이 이 구도 안으로 성큼 들어오게 되었다. 초대의 기준과 대상은 전시의 전제를 받아들이는 입장과 해석에 따라 다변적일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각자가 그려보는 ‘2인조’란 과거의 스승, 현재의 동료, 미래의 후배 혹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온갖 조합일 수 있으며, 상투적인 ‘관계도’ 논리로는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타입의 상호지지체일 수 있다. 동일한 이유로, 다양한 ‘2인조’의 모델 안에서 촉발될 수 있는 활동의 양태 또한 예단하지 않은 속에서 그 불투명함을 기대해보게 한다.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공동의 결과물 단계를 지나 더 먼 단계, 더 높은 위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탐구와 배움의 언저리에서 새로운 학습과 탈학습이 교차하며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치박스의 첫 번째 에디션을 통해 작가가 고독하게 방어해야 할 개인의 세계와 끊임없이 허물어내야 할 자리는 어디에 있을지 함께 가늠해 보았으면 한다. 매치박스에 담긴 변수 X들과 앞으로 이어질 에디션 X들을 기다리며.

글. 조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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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결 X 김화용
[짠물 아래 화석]

# 대화 - 추적 - 발굴
동료이자 인천 연수지역에 오래 거주했던 지역민이기도 한 김화용 작가를 초대하여 구 송도 지역(현 아트플러그 지역)의 생활 문화사와 지역민으로서 겪은 동네와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윤결은 가까운 동료이자 선배인 김화용으로부터 인천과 구 송도 지역이 가지고 있던 타자적 요소와 에피소드를 익히 들어왔지만 그 이야기는 기억에 파편처럼 분절되어 존재했다. 그런데 최근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을 위한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연결하게 되었다. 현재의 ‘송도'라는 이름은 바다였던 곳이 땅이 된 역사처럼 기존의 이미지는 지워지고 포장되어 새롭고 화려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본래 오래도록 ‘송도’라 불리던 바다와 땅과 지역은 자신의 이름이 지워졌다. 그리고 그사이 어떤 존재들이 이 이름과 함께 사라졌을까. 또 윤결의 기억에 남아 있는 ‘청량리’ 주변 존재들의 이야기들과도 연결된다. 지역과 지역을 둘러싼 비가시적이고 묻혀버린 존재들을 함께 떠올리고 추적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있지만 보이지 않거나 지워진 존재하는 것을 상상과 결합해 발굴한다. 간척으로 묻힌 화석을 캐내듯 만들어지는 토템 오브제는 이곳 본래의 물성이었던 갯벌의 점성을 가진 흙으로 제작된다.

# 구 송도 1, 송도유원지
내 몸에 각인된 ‘송도'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미래적 분위기가 풍기는 지금의 국제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해수를 끌어오고 모래를 쌓아 만든 뭔가 조악한 해수욕장에 구식 놀이기구가 돌아가고, 녹조가 많고 깨끗하지 않은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는 풍경의 유원지가 있던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에 개장했다는 송도유원지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이곳 역사의 끝자락 장면이기에 낡았고 생을 다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능이 멈춘 장소는 아니었다. 동춘서커스가 인천에 머무를 때도 이곳에 텐트를 쳤고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봄 소풍 단골 장소였다. 시대를 풍미하던 이곳이 급속도로 노후화된 이유도 들여다보면 송도신도시 개발에 있다. 송도유원지의 인공해변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수문을 열고 닫으며 바닷물이 들고 났다. 하지만 송도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유원지 앞 바다는 육지가 되었다. 해변(바다)이었던 곳이 육지에 둘러싸여 호수가 되었고 순환되던 물은 고이고 고립되어 썩어갔다. 20세기 인간에 의해 땅은 바다가 되었다가 다음 세기엔 인간에 의해 바다는 땅이 되었다. 바다와 육지에게 ’정주권(定住權)’이란 없다.

# 구 송도 2,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송도유원지의 큰 대문을 나서면 바로 직선도로로 오르막길 보인다. 로터리와 연결된 그 언덕을 바라보면 길 끝에 모뉴먼트 같은 형태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6·25 한국 전쟁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기리기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이다.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인지는 혼란스럽다. 나의 가족 또한 인천 바닷가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면 바다를 건너 황해도 고향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인천의 바다는 일제강점기부터 물자만 들고 난 것이 아니라 많은 디아스포라가 오간 길목이기도 했다. 모뉴먼트답게 높게 솟은 첨탑 형태의 기념관 뒤에는 나지막한 능선의 산이 있다. 완벽한 배산임수의 지형에 기념관은 위치한다.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아름다워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도 트래킹 코스로 인기 있던 청량산이다. 이 산에 오르면 유원지 너머 너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이제 여기서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가 보인다. 송도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바다는 메워졌고 바다는 땅이 되었다.

# 구 송도 3, 나의해방일지
유원지와 기념관 그리고 등산코스까지 송도는 위락을 위한 지역이지 거주나 삶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과거 유명했던 호텔과 숙박시설, 특별한 가족 모임이나 접대를 위한 식당들이 더러 있었다. 그마저도 새로운 것들은 아니었다. 등산이나 외식을 위해 사람들이 나오는 주말이 아니면 주중에는 한적하다는 말도 모자란 시공간이 멈춘 풍경이 되었다. 이런 곳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기 만무했다. 현재 송도신도시에 지하철과 다양한 지역으로 뻗어있는 고속 광역버스 심지어 수십 킬로에 달하는 한국 최장 길이의 다리까지 놓인 것을 생각하면 과거의 구 송도는 산과 바다에 둘러싸여 어딘가로 나가기 어려운 고립의 섬이었다. 딱 두 대의 시내버스가 긴 배차 간격으로 가끔 오갔다. 나와 이웃 사람들은 학교와 직장을 오가기 위해 집을 나서 뜸하게 오는 버스를 타고 수십 분 만에 역에 도착한다. 여기까지 와도 이제 겨우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과거 송도라고 불리던 지역은 시민들에게 일시적 유희와 해방을 위한 소비의 장소이면서 거주자에게는 매일 매일 해방해야만 하는 탈출의 장소였다.

#인천 앞바다, 짠물
본인(김화용)의 작업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는 염전으로 유명한 지리적 특성과 가난한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살던 인천의 지역사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지역-갯벌-염전이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비인간과 생태를 포함한 삭제되는 존재들을 다루는 텍스트 기반의 작업이다. ‘소금’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임에도 건강의 적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인간이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섭취하며 생기는 문제 때문인데 애석한 일이다. 소금 산지로 유명했고 가난한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살던 인천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짠물'이라고 불렀다. 인천태생이라면 자주 들어봤던 말이다. 인천은 한 때 전국의 소금 생산량의 대부분을 책임졌고, 한국 근현대사 역사 안에서 침략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이주민과 디아스포라의 정착지로, 한국전쟁에서 상륙작전을 했던 곳으로 또 산업화 시기 공장지대 노동자가 모여들었던 아픈 이야기가 관통하는 곳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방패가 되고, 터전이 되었던 지역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이 지역인들에 대한 혐오 표현이다. ‘빛과 소금’이라는 말에서처럼 생명에 대한 가치는 퇴색되고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소금’의 현실과 유사하다.

# 뜨거운 방
최근 몇 년 세계 이곳저곳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산불이 일어났다. 아마존부터 유럽 여기저기 그리고 가보지는 않았어도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호주, 캘리포니아까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한 번의 산불로 호주의 코알라는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외국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매해 큰 산불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고 올해는 200여 년의 시간을 담은 금강송 군락지가 탔다. 600년이 넘은 나무도 있는 곳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오고 훌륭한 정치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이 탔다. 거대한 산불은 공기를 어마어마하게 뜨겁게 한다. 이미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대형산불은 불에 기름을 붓는 거나 다름없다. 물이 펄펄 끓으니 지구에 있는 물은 온통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고 가뭄이 심각해진다. 그렇게 건조해진 땅과 산은 타기 더 쉬워진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우리는 방이 너무 덥거나 공기가 나빠졌을 때 창문을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고 더운 공기는 나가게 환기한다. 지구라는 큰 방도 극지방의 찬 공기가 적도 쪽으로 내려오고 더운 공기는 극으로 올라가는 보이지 않는 ‘이동'이 계속되면서 균형을 맞춰왔다. 하지만 극지의 얼음이 녹으며 거대한 반사판이 줄어들고 그곳의 바다 수온은 올라갔다. 극지도 적도도 모두 뜨거워져 버린 지구의 공기는 이동하지 못하고 계속 정체 중이다. 공기와 대기에게도 ’이동권 투쟁'이 필요한 시간이다.

# 얼어 있던 땅
지구가 뜨거워지고 시베리아의 수천 년 녹지 않던 얼음층이 녹고 있다. 극지방 가까운 긴 잠을 자던 얼어있던 땅, 동토층이 녹으면 가까이는 그 지역 주민들의 기반이 녹고 터전이 붕괴되는 것이다. (사실 이미 진행 중이다) 한발 더 나아가 땅이 녹아버리면 얼음에 갇혀있던 메탄은 폭탄 터지듯 방출되고 또 기온도 급격히 오를 것이다. 조금씩 녹았다 다시 얼었다 하며 땅과 물에 스며들던 얼음 속 유기물은 그 지역을 비옥하게 해왔다. 하지만 급격히 녹아버리면서 얼음땅 아래 ‘화석’으로 오래 잠들어 있어야 했던 바이러스들이 세상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변화에 바이러스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변이될지 예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이 끝나가는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후재난의 첫 사건을 겪은 것뿐이라는 걸 각성해야 한다.

#청량리, 1호선 출발 : 도돌이표
역 앞의 1등 로또 가게, 사람 구경 나온 움직이지 않는 비둘기, 내기 한판 하는 아저씨, 경동시장 몸보신 식재료들, 집으로 가는 588번지 골목길.어린 시절 집으로 가는 길목의 붉은 조명이 길게 늘어진 청량리역 뒷골목은 마치 음악방송 티비쇼를 위한 무대 같아서 어둑해질 무렵이면 마치 무대에 오르듯 친구들과 자주 뛰어다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듣게 된 588번지는 전염병을 옮기는 사람들이 사는 피해야 하는 곳이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내가 거기에 있다는 걸 봤다가 반 아이들에게 말을 전한 이후 나는 전염병의 균을 가진 아이가 되어 버렸다. 학급에 감기만 유행해도 나 때문이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이야기지만 코로나 감염병이 처음 발병되었을 때 화살이 어디로 향했었는지 상기하게 된다. 나는 이사한 후에도 그곳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1991년)

#전염병과 혐오, 청량리 정신병원과 노숙인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다. 등굣길 버스 맨 뒤 좌석에 앉은 내 옆에 한 아주머니가 와서 앉으셨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노숙인 아주머니였다. 인사는 나누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꽁꽁 묶어 매일 어딘가를 오갔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비닐봉지를 뒤적이더니 강냉이 한 주먹을 꺼내 건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리던 나는 계속 바라보는 아주머니 시선에 조금씩 강냉이를 먹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쓰다듬으며 뭐라고 중얼중얼 말씀하셨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버스에 탄 다른 친구들이 강냉이를 먹고 있는 나를 볼까 봐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3~4정거장쯤 지났을까. 아주머니가 먼저 내리며 큰 소리로 모두가 들리게 말했다. “엄마 먼저 간다.”
(2000년)

#은평구러그버그
#사랑벌레 때문에 미치겠다
#둘이 붙어 다니는 모습 징그러워 #어떻게 죽여야하나요?
#사랑벌레는 밝은색을 좋아합니다 #러브버그방역
#까만벌레
#사랑벌레는 물지 않습니다. #다른 질병을 전파하거나 매개하지 않습니다.
(2022년)

#선장이라고 불리는 선정 언니
‘저 아저씨 여자야 남자야?’ ‘이상해! 구두를 신었어.’ ‘옆에 있는 똥개 목에 리본을 묶었어. 웃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아줌마는 선장이라고 불렀고, 또 어떤 사람은 선정 언니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 인천에서 뱃일을 하며 선장 일을 했다고 해서 누군가는 ‘선장’으로 불렀고, 옷이나 헤어스타일 등 차림이 여자 같이 보인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선정’ 언니라 불렀다.
(1997년)

#청량리 재개발, 주상복합단지
이곳에 살던 이들이 재개발 후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본래 주인이었던 자들은 지워져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침식되어 저 밑으로 가라앉아 화석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없고 재개발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하는 과정에 언제나처럼 공공미술이 등장했고 작가가 동원되었다. 나는 주민이고 이웃이지만 또 예술가이다.
(2013년)

#진흙
진흙을 만질 때 그 묽은 촉감이 손가락 사이에 스며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젖은 흙의 감각을 언제 또 느꼈나 생각한다. 비 오는 날의 흙냄새는 깊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존재들이 스며드는 빗물에 젖어 자신의 향을 뿜어 올린다. 물과 흙이 만났을 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충분하게 드러내는 순간. 차(tea)를 마시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식물이 물에 잠겨 ‘침(浸)’할 때 드러나고 우러나는 숨은 개성이 있다. 그 식물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시간.

글. 윤결X김화용
* 김화용의 작업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의 글과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대본에서 발췌 및 각색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짠물 아래 화석' 부분, 도기위에 유약, 가변크기,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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촙촙챙 (갈유라 X 강은구)
[우주성가,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
우리의 표피와 탈각물이 고대 유물로 남을 때까지.

최근 우연히 길을 걸어가다 생활환경 유해 물질(이하 환경 물질) 무료 검사를 받게 된 동료에게서 자신의 체내에 흡연 관련 물질보다 화장품과 플라스틱에 함유된 환경 물질이 더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말을 떠올리며 하루 중 내 몸에 물 이외에 닿는 것은 몇 가지가 될지 천천히 손가락을 꼽아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트리는 것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닳고 닳아 더 이상 나올 유해 물질도 없을 것 같은 오래된 텀블러가 여전히 자신의 몸체를 서서히 분해해 가며 나의 입과 닿고 있다는 사실. 이라던지 금속 알레르기를 피해 대체된 플라스틱 귀걸이는 마치 착용하지 않은 듯해 잠을 잘 때도 여전히 나의 살을 관통하고 있는 상태. 라던지 이렇게 접히지 못한 손가락들을 통해 이미 자연스레 한 몸체가 되어있는 물질과 나의 관계를 어설피 추적하게 한다.

귀걸이를 빼도 생활이 가능한 상태, 텀블러를 입에 대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상태의 경우라면 몸에서 다시 분리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내 몸체와 닿는 것 중 제거할 수 없는 물질 혹은 필수적인 물질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초 미립자로 체내에 흡수된 채 배출되지 않은 환경 물질, 내가 승인하지 않은 물질 이외에 내가 승인한 환경 물질이 여전히 내 신체와 생동(生動)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새로운 나의 몸체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려나. 같은 질문으로 지난 2019년 촙촙챙의 ‘스페이스플라스틱(2019)’은 겨울이 되어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완충된 일명 ‘두꺼운 플라스틱 패딩’을 꺼내 입다 문득 플라스틱에 의존한 겨울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구에서 생산된 합성 물질을 우주로까지 보내는 인류의 플라스틱에 대한 열망을 풍자하는 것을 첫 음원으로 발표하였다.

지구에서의 삶은 이미 많은 물질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초과적인 형태가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거쳐 공산품을 수출하는 국가들은 점차 부자 나라가 되기 시작했고, 20세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다시 재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공산품들은 기술과 만나 그야말로 공산품의 황금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작고 간편(콤팩트)한 디자인은 모든 광고들의 키워드였고, 20세기 초반의 화려하고 튀는 색감들은 촌스러움으로 치부 당하며 마치 각자의 색을 잃은 듯 점점 금속화되어가며 빛나기 시작했다. 현대의 기술은 결코 촌스러워서는 안 된다. 마구잡이로 찍어낸 공산품들보다는 복잡한 기술을 그렇지 않은 척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심플한 디자인이어야 했다.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컬러는 스페이스그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는 새로운 결합. ‘초과적’이지만 가장 단순한 척해야 하는 외관 디자인들이 필요했다. 손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제어기술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통해 더 많이 중첩되어 수 겹의 포개어짐이 가능해지는 ‘압축과 축소’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의 기술이라고 해봤자 기존 기술과 기술의 결합이 신기술이 되는 형태. 즉, 냉장고에 패널이 들어가면 스마트 냉장고가 되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나의 워시타워가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더 얇고 더 강력한 그 집합체는 우주여행선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이 군더더기들을 비웃는 듯이 추진력을 다한 로켓-추진체는 더 가벼움을 선사하기 위해 고농축 연료를 싣고 우주선의 몸체에서 다시 탈각되며 지구와 우주 양 간에 쓰레기를 남긴다. 그렇게 과거 수세기의 초과적인 것들이 넘쳐흘러 지구 밖으로 대기 밖으로 대형 신기술 공산품이 서로 다투며 열권을 뚫고 잔해를 피해 잔해를 남길 미래로 가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오늘 아침 스킨을 바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유수분의 밸런스를 위해 내가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물질(로션)과 살갗의 스침이 신체의 차원에서는 승인 없는 유해물질과의 강제된 결합이라는 점과 피부 표피에 구멍을 내어 백신을 주입하는 주사 행위 ㅡ매개물질(주사기) - 외부 물질(백신) - 신체(지구 혹은 우주)ㅡ의 구도에서처럼 개인의 결정권으로 승인이 없이는 외부 물질(백신)과 매개되지 않으며, 반대로 승인하는 경우에도 신체의 승인 여부와는 상관없이 체내에서 강제 백신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백신에 대한 거절 의사 문제는 차치하고 자의와 타의. 상관이 있는 경우 무관한 경우.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경우. 불필요 그리고 필수와 필요 간의 차이를 이 관계를 통해 되짚어 보게 된다. 우주라는 그 순수한 몸체가 있었다면, 이미 우주라는 순수 몸체는 환경물질에 노출이 된 듯 지구와 우주의 얇은 장벽을 아무런 동의도 없이 외부로부터의 뒤섞임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닐까? 촙촙챙은 인간 중심적인 사상과 지구 쇼비니즘에 대항하는 음악그룹이지만, 이것 또한 너무 인간의 차원으로 해석하고자 우주를 인간화 시키는 위선 된 배반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공위성 실험발사체 혹은 우주 여행선 그것이 인간의 차원에서 발사 실패작이던 성공작이든 간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지 우주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관점을 두고 싶다. 승인되지 않은 미래 개척지를 향한 우주 발사. 이 따끔한 주사는 이후 우주에 치유되지 않을 수많은 철조각과 플라스틱(환경물질)이라는 흔적을 우주라는 몸체에 남기게 될 것이다.

의외로 우리가 그려온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90년대 중반에 가장 빛이 난다. 당시엔 우주가 멀어 보였기에 상상의 가능성이 더 컸을 테고, 멀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듯한 21세기형 신기술이 우주와 더 가까워진 탓에 구체적인 청사진 제공이 충분하단 착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1977년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999〉는 과거 우주에 대한 상상력에 빗대어 지구를 돌아볼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부의 양극화가 이뤄진 지구는 기계화된 인간만이 남는다는 설정과 지구를 떠난 인류와 반-기계 인간들은 여전히 우주에서도 기계화와 자본에 저항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기계주의에 대한 비판, 계급주의의 비참함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이 낡은 미래의 사상이 가장 미래다운 상상력이 되었다.

1965년 벨 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의 전파망원경에 알 수 없는 잡음이 잡혔다. 이 잡음은 우주 사방에서 잡혔고, 절대온도 3K로 측정됐다. 두 과학자는 바로 ‘우주배경복사’라는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자인 아노 펜지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밤 밖으로 나가 모자를 벗고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빅뱅의 열기를 느껴보세요. 아주 성능이 좋은 FM 라디오를 가지고 있고 방송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쉬쉬쉬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거든요. 그 소리는 마음을 달래주고 때로는 파도 소리 비슷합니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수백억 년 전부터 오고 있는 잡음의 0.5% 정도일 뿐이예요."

잡음의 0.5%. 그의 말대로 우리가 지구에서 FM 라디오를 통해 우주의 공명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아주 먼 곳을 향해 공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유한하고 경계 없는 공간으로 흩뿌려진 잡음은 서로의 승인조차 필요 없을 테니, 그 가사와 멜로디는 서로 닿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일지라도 그것은 아노 펜지어스가 잡음을 어렴풋이 빅뱅의 열기로 느끼듯 잡으려 하는 자에게 잡히고 닿으려 하는 자에게 닿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곳에는 음악이 필요하다. 그렇게 촙촙챙은 비-승인된 지구로부터 0.5%의 잡음으로 도달할 우주성가(宇宙聖架)를 물질과 복사가 존재하는 곳으로 흘려보낸다. 우주의 몸체로. 서서히.

촙촙챙(chopchopchang)은 인간 중심적인 사상과 지구 쇼비니즘에 대항하는 음악 그룹이다. 그런 이유로, 촙촙챙(chopchopchang)은 그들만의 오브제를 제작하고 사운드를 결합하여 생명을 부여한다. 이러한 의식들을 통해 우주와 조우하기 위한 우주성가(宇宙聖架)를 제안하고,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본 우주가 아닌 우주의 관점으로 우주의 생태를 위로하고 기리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지구에서 토용(土俑)은 왕의 고분이나 사람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흙 인형‘으로 산자가 죽어 사후 세계로 가는 길을 함께 하는 고대 유물이다. 토용(土俑)이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를 잇는 교신의 역할을 하는 사물이라면, 촙촙챙(chopchopchang)이 만들어 낼 성용(星俑)은 우주와 지구를 잇는 교신의 역할을 하는 사물이 된다.

성용(星俑)의 형태는 화강석, 코코넛껍질 등 지구의 자연 일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부에는 노이즈를 담당할 베이스, 드럼비트, 신디사이저, 기타, 보이스 등 개별 소리 조각― 유형(有形)의 조각과 전체의 일부라는 이중의미를 가진다. 성용(星俑)은 기본적으로 5개 혹은 다중으로 존재하며, 이들이 물리적인 장소에 함께 모이게 되면 이는 우주성가(宇宙聖架)가 된다.

촙촙챙(chopchopchang)의 우주성가(宇宙聖架)는 우주먼지들이 생산하는 소리들의 진화와 속삭임을 통해 우주와 가까워지려는 시도의 연속이다. 과거의 우주먼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 탄생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면, 성용(星俑)의 노이즈 는 다시 미래의 우주먼지가 되기 위한 노래가 될 것이다.

글. 촙촙챙 (갈유라X강은구)

 

(왼쪽 부터) 스페이스 플라스틱 뮤직비디오, 싱글채널 비디오, 00:03:43, 2022 / 성용5(星俑)보이스, 가변재료+사운드+동작센서, 가변크기, 2022 / 성용3(星俑)신디사이저, 가변재료+사운드, 가변크기, 2022 / 성용1(星俑)베이스, 가변재료+사운드, 가변크기, 2022 / 성용4(星俑)기타, 가변재료+사운드+동작센서,가변크기, 2022 / 성용2(星俑)드럼비트, 가변재료+사운드, 가변크기,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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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X 김한나
[성격차이]

연예인 가십 기사에나 나올법한 ‘성격차이’란 말은 관계를 정리할 때 자주 등장한다.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사건건의 차이는 동거 혹은 관계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작가와 작가 사이의 성격차이, 다시 말해 서로의 작업 간에 생기는 성격차이 (태와 감각의 차이쯤이라고 하자)는 동료 관계를 지속시키는 묘한 매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작업에 투영된 각각의 시선, 조형성에 대한 취향, 감정 등 작업에 담긴 서로의 감각들이 생경하면 생경할수록 반대 세계를 궁금해하고, 관계를 지속시키기도 한다. 개인의 세계가 단단해질수록 외부와 소통하는 유연함 또한 가져야 하는 작가의 삶에서 약간의 성격차이가 있는 동료를 갖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김한나와 전장연은 공간을 다루는 입체, 조각, 설치의 조형성에 관심이 있는 두 작가이다. 서로 어긋나 있는 시선과 온도는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서로 비교되어 보자는 셈으로 각자의 작업 중에 ‘면(面)’이라는 광범위하고도 기본적인 특징을 대조군으로 잡아 전시할 작업을 선택하기로 했다. 김한나는 둥근 면을 조형하는 과정 속에서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속성을 전복시키고 공간과 입체, 조각과 회화에 걸친 면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그에게 있어 관습화되고 탈락되고 마는 여분의 것들에 대한 옹호의 선언이기도 하다. 전장연이 주목하는 면은 화장으로도 어두운 낯빛을 감출 수 없었다는 일상적 내러티브에서 출발하여, 어긋나고 들키기 쉬운 면, 말 그대로 ‘얼굴’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면의 형태를 빌려 서로의 다름을 흥미롭게 응원하며 바라보는 두 작가의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직선과 곡선의 면들은 작업의 교집합을 형성하는 동시에 각자의 길을 확고히 하는 두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 전시장에 마주한 대면의 시간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선 후에도 질문을 남긴다.

전장연의 변

어지러워진 회색 바닥이었던 것 같고,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어낸 점심시간, 스튜디오에서 두세 개의 칸막이를 지났을 때 만났던 것 같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는 왜 꼭 사각형은 사각이고 직선은 꼭 직선이야’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말인지 단번에 알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형성되었을 그 성향이라는 것이 규격과 답이 있기를 바라며, 유기적인 형태보다 선으로 반듯하게 오려낸 기하학이 더 편안한 그런 조형적 취향을 만들어 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 때문에 답답해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나와 정반대일 것 같은 그녀의 한마디는 ‘아 꼭 그럴 필요는 없었어’라는 반전으로 작업에 크게 번졌다.

나는 작업에서 여전히 도형의 수치와 단정함을 즐겨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화 이후 작업에는 유머가 있는 척, 의외성과 물렁물렁한 즉흥을 묻혀놓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내 작업에 숨어있는 서사이자 사물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한나의 작업에서, 여전히 나라면 손으로 자른 톱질 자국에 사포질을 했을 것이고 흘러내린 물감을 닦아 내었겠지만 바라보는 타인의 손맛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의견을 물어보는 한나에게 ‘법이고 뭐고 없는 사람처럼 작업하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언뜻 진지해 보인다는 내 얼굴과 다르게 빈틈 가득한 행동과 흥분이 있으며, 몸의 그림을 그려 넣는 한나의 장난스러움에도 똑 부러지는 그녀의 결단력이 돋보이듯 각자 내면과 닮은 작업의 매력은 성격이 다른 타인으로부터 발견되고 응원 되는 듯하다.

김한나의 변

우리의 일상 대화를 곱씹어 본다. 회의적인 듯 심드렁한 말에 끊임없이 ‘괜찮아, 할 수 있어’로 답변하는 근거 없는 긍정의 언어들을 서로에게 내뱉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처럼 도돌이표 같은 대화 안에서 우리의 포지션은 작가와 친구라는 관계 안에서 크로스를 이루고는 한다.

형식과 체계를 중요시하는 전장연과 흐름과 감각에 집중하는 김한나는 겉모습도 성격도 다른 면모를 지닌 듯하다. 기존 주어진 의미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전장연에게 체계 없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김한나의 방식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불안한 듯 서 있지만 안정감 있는 구도를 유지하며 작업을 구축시키는 전장연의 작업은 김한나에게 고정된 관념 안의 규칙적인 도형처럼 읽혔을 것이다.

김한나가 관찰하고 분석한 전장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구글 서치 페이지를 10장 이상은 넘겨보는 집요함을 가진 사람이다.’ 기껏해야 2페이지 정도만 체크 하는 김한나에게 전장연의 행동은 집착적이기까지 해 보인다. 리서치에 기반한 메마르고, 객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거 같은 그의 행동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소녀 같은 감상에 젖어 들어 촉촉해지는 그의 면모를 발견할 때면, 나의 건조함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짐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우리는 다른 포인트에서 감동하고, 공감하지만 결국에는 함께 눈물짓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글. 전장연X김한나

 

낯빛, 나무, 화장 퍼프, 스테인레스, 셰도우,130×110cm, 2021

 

O (아) 벌린 입은 O (오) 로 모여 ● (공) 을 향한다, 나무 패널, 스프레이, 아크릴, 유채, 레진, 철재구조, 가변크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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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호 X 이수빈
[우리의 토템]

사진과 영상을 다루는 정정호 작가와 목조각을 하는 이수빈 작가는 커플이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구성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고양이 ‘밀감’이다. 사람만 살던 공간에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집 안은 고양이가 숨는 공간인 박스와 스크래처로 어지럽혀지고, 최적의 고양이 동선을 생각해 가구가 배치되었으며, 그토록 자주 들락날락하던 해외는커녕 1박 이상의 국내 여행도 어려워졌다.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경치 좋은 곳은 고양이 차지가 되었고 집에 돌아오거나 나갈 때 제일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는 것도 서로가 아닌 고양이 밀감이다. 이 작업은 고양이 밀감이 우리에게는 토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작가 정정호와 이수빈은 그들이 신성시하는 존재, 받들고 돌보아야 하는 존재인 고양이를 토템으로 기린다.

“토템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오지브와족이 어떤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특수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그 동·식물류를 집단의 상징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오늘날 토템이라는 말은 이런 유의 사회현상에서 집단의 상징이나 징표로서의 동·식물이나 자연물을 가리키는 데 널리 쓰이며, 토테미즘이란 토템과 인간 집단과의 여러 가지 관계를 둘러싼 신념·의례·풍습 등의 제도화된 체계를 가리킨다.”

토템은 인간의 역사에 오래 존재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각자의 토템이 존재한다. 기꺼이 애착과 애정을 쏟아붓고 그로 인한 제약을 받아들이며, 마치 바다로 모여드는 물줄기처럼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곳에 이르러 강력한 신앙이 된다. 우리는 현대인을 지탱하는 내밀한 애정의 대상을 토템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해 보고자 한다. 또한 각자의 길을 가던 서로가 공통의 존재로 연결되어, 그것이 촉발한 예술적 상호작용을 풀어내고자 한다.

글. 정정호X이수빈

(왼쪽 부터) 낮잠, 싱글채널 비디오, 00:10:00, 2022 / 사냥의 시간, 수집한 유목 위에 아크릴, 물소뿔, 5×6×37cm, 2022 / 캣워크, 메이플, 파덕, 12×9×40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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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류 X 수연
[평행하는 메타포]

윤미류와 수연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것에서 오는 감각을 각자의 시각언어로 보여준다. 사적인 관계들로부터 촉발된 사건과 감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은 서로 상이한 형상들이다.

윤미류의 그림은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대상을 에둘러 설명하는 언어, 그것이 단편적이든 세세하든 모호하든지 간에 대상에 대한 일부 짐작만을 가능케 하는 표현을 이미지로 번역할 수 있을까?’ 윤미류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개인적이며 추상적인 감각을 보여주기 위해, 배경, 의상, 소품, 제스처 따위를 연출하고 결합한다. 인물이 공간 및 사물 등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조형성과 내러티브에 주목하며, 그들이 가진 고유한 물성을 시각화한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다층적인 감각을 여러 연출 상황에 비유하여 이미지로 번역하려는 시도이다.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관객들에게 노출된 정보가 많은 재현적인 화면을 만든다.

이름을 댈 수 있는 특정한 인물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자 그 인물을 계기로 파생된 추상적인 감각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그를 매개로 하여 그리고자하는 보다 일반적인 상태, 감각, 조형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려내는 모든 장면이 자신에게 고유한 한 장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에 있을법한 이야기의 한 토막이 되기를 원한다.

수연은 그러나 대상을 의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를 찾는다. 예컨대 자아, 사랑, 시간과 같은 개념은 너무도 커다랗기에, 이를 기록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으로 기하학적 도형과 동화적인 이미지를 선택한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기호들로 압축시켜 표현하는 것은 광활하며 불가해한 이 세계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와 형태로 바꿔보려는 시도이다.

수연에게 있어 이미지를 추상화하는 일은 대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묘사를 줄여나가며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익숙한 외피를 발라내어 대상의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만들어진 뼈대만을 화면에 놓고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다. 그리하여 어쩌면 우리는 그림을 통해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순간들을 쉬이 지나치지 않고, 충분히 감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윤미류X수연

 

Orange girl, 캔버스에 유채, 40.9×31.8cm (×2pcs), 2021

 

(왼쪽 부터) Intersection, 캔버스에 아크릴, 60.6×60.6cm, 2019 / Our Souls at Night,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cm, 2019

 

2022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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