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전시] 박지아 개인전 <숨어있기 좋은 방>

전시기간2023.10.05 ~ 10.15
전시명숨어있기 좋은 방
작가박지아
시간10시-18시 | 휴관_10.8.(일) / 10.9.(월)

[APY 대관전시]
<숨어있기 좋은 방>

✉작가 편지
Dear.Prol

언니, 오랜만이에요 정말.
숨어있기 좋은 방이 사라진 이후로 처음인 거 같죠? 아니다 언니 생일 무렵 편지를 썼던가?
언니 말고도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처음 좋아했던 기억, 생각이 많아지는 밤, 저의 20대의 모든문장들이 담겨있고, 결혼 후 출산과 육아의 고단함으로 지쳐있을 때 숨어들 수 있었던 '숨어있기 좋은 방'이 저는 참 좋았어요. 비록 언니의 홈페이지였지만, 언니를 알게 된 19살부터 34살까지의 제 속 이야기들이 적혀있으니 2할 정도는 제 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무려
7년 만에 다시 전시하면서 숨어있기 좋은 방’을 아주 크게 만들었어요.
전시장 자체가 언니나 저에게 그리고, 숨어있기 좋은 방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하나의 "숨어있기 좋은 방”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숨어있기 좋은 방’의 시작은 그때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막 태어나고 3살 정도 되기까지 저 또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로만 가득 채워지는 하루들을 보내는 아주 고단한 날들이 계속되던 그 무렵이요.

한 낮이었어요. 밤새 아이를 돌보고, 하루 중 오롯이 혼자 있는 것처럼 고요해지는 아이의 낮잠 시간.
암막 커튼으로 암흑이 된 거실에 아이를 안고 누워 지금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구인지 이 끝없는 육아는 언제 끝나는지 의미 없는 질문들이 가득 차올라서 흘러넘치기 직전에 베란다 암막 커튼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렁이는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꼭 마치 빙하의 모습 같았어요.

작업 에스키스들을 모으기 위해 늘 들고 다녔던 카메라에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모습들이 채워지고 있던 그 무렵 눈앞에 빙하의 풍광이 펼쳐저있으니 생각할 겨를없이 옆에 있던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던 것 같아요.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이는 검은 공간 속 뷰파인더의 장면들은 더더욱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빙하가 되고, 바람의 움직임이 저를 빙하가 보이는 검은 바다 위로 데려가 유영하게 했어요.

엄마가 되기 전부터 엄마가 되고 난 후에도 종종 혼자 있고 싶어질 때 들어가 있었던 언니의 ‘숨어있기 좋은 방’ 공간에서 느꼈던 아늑함이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던 그 방이 우리 집 거실에서 발견한 풍광 하나로 생겨난 거였죠. 비록 한쪽 팔에는 언제 깨어날지 몰라 조심스러운 아이의 온기가 있었지만, 육아로부터 벗어나 우연히 발견한 풍경으로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로 데려다주었어요. 잠시나마 일상의 공간에서 순간이동을 하듯이 말이에요.

그리고 오롯이 그 풍경을 바람과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그 순간이 주는 힘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지친 일상에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들을 조금씩 다시 찾아주었으니까요. 그 간절한 마음들은 지친 일상들 속에서 오직 시선의 변화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들의 풍광을 찾아낼 수 있게 했어요.

암막 커튼의 새어 나오는 빛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빙하에서부터, 선팅되어 검은 밤하늘이 되어버린 차창에 쌓인 눈들이 만들어 낸 설산의 풍경들, 세차장에서 발견한 푸른 밤하늘과 산맥들까지. 분명 일상에서 늘 접하던 익숙한 사물이나 풍경들이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고, 뷰파인더로 보는 동안 네모난 작은 방안의 그 풍광들이 오롯이 그 속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마치 '숨어있기 좋은 방'에 잠시나마 들어가 숨 쉬는 것처럼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드디어 아이가 자라난 만큼 딱 그만큼의 제 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했을 때, 일상속에서 찾아둔 다양한 숨어있기 좋은 방들을 하나둘 차곡차곡 모아 작업을 만들어 이렇게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숨 쉴 수 있게 해주었던 풍광들을 영상과 사진에 담아 네모난 방들을 만들고, 작업하는 동안에도 저를 오롯이 그 방에 들어가 있을 수 있게 한칸 한칸 채워나간 그림들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숨어있기 좋은 방들에서 발견한 풍경 속에 있던 것들을 일상에서 늘 마주하던 재료로 만들어서 그 풍광들이 허상이 아니라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곳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하는 동안의 저에게만 숨어들 수 있었던 곳이 아닌, '순간의 숨이 필요한 누군가'도 숨어들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과연 그 누군가에게도 숨어있기 좋은 방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적어도 저에게 만큼은 그리고 언니에게 만큼은 ‘숨어있기 좋은 방’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늦은 새벽 언니와 함께 숨어있기 좋은 방에 접속해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그날들처럼 말이에요.

그리니까 우리,

아주 오랜만에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곧 만나요.

2023년 9월 늦은밤, 지아🌙

🧩문의: 아트플러그 연수
070-4466-1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