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전시] 우은오 개인전 <마더 김여사>

전시기간2023.09.15 ~ 09.26
주최/기획후원: 연수문화재단

[APY 대관전시]

✔ 전시명: 마더 김여사
✔ 작가: 우은오 (Solo exhibition)
✔ 날짜: 9.15.(금) - 9.26.(화)
*오픈: 월-토 / 10시-18시
*휴관: 일요일
✔ 장소: 아트플러그 연수
✔후원: 연수문화재단

⭐critic
"생명의 힘으로 돌보는 삶: 끝이 올것을 알면서도 혹은 알기에"

우리 사회에서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확인한 분기점은 개나 고양이 등 가정에서 키우는 동물들 일체를 ‘애완동물’ 이란 용어 대신 ‘반려동물’이라 부르게 된 일이다. ‘짝이 되는 동무’를 뜻하는 ‘반려’는 동물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주체 역시 동등한 사랑받음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동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의 양방성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기에 순조롭게 통용되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는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식물을 사랑하고 키우는 동안, 사람도 사랑받고 치유되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게 느껴지는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푸른 잎과 화사한 꽃이 기분 좋은 시각 정보를 제공하고 공기를 정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부족하다. 앞서 동물의 경우를 살펴보았듯이 유용성이 반려의 요건은 아니다. 식물이 반려가 되는 것은 일종의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인데, 타자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 1906~1995)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신비와의 관계’이다.

그는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 등 타종의 생물과 공동체나 공감이라는 상호 주관적 범주를 초월한 ‘신비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유는 만물에 공통된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는 ‘생명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1941)의 사유와도 친연성을 갖는다. 그들에게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이 에너지는 영속된 시간 속에서 끝없는 생성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즉 생명은 죽지 않는 영혼으로서 지속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은 물질적인 것 일뿐, 정신적으로는 영원성의 단절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인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손에 따르면 정신적인 에너지는 ‘비결정성’을 가지고 있어 순수 지각을 넘어선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그 자체를 넘어 정신적 의식의 개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지로 연장되는 과거는 영속적이고 창조적인 시간 속에서 물질적 죽음이 영원한 생명의 변화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이들에 의해 논의된 생명, 사랑, 죽음, 기억 등은 20세기 이래 형이상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제이자 작가의 작품을 이루는 축이다.

2019년 즈음 시작된 ‘마더 김 여사’ 프로젝트는 남편과 막내아들을 잃은 모친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황망함만이 가득 찬 모친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주제의 대화를 하고 싶었던 작가는, 평생 농사를 지은 모친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화단 가꾸기를 배우기로 했다. 그때부터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은 대화의 주제가 되었으며, 씨 봉투에 인쇄되어 있는 ‘꽃’은 일종의 목표가 되었다. 특히 모친이 불자인 작가에게 꽃은 불교에서 의미하는 바처럼 탄생, 죽음, 재생, 깨달음, 결실 등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생각은 창작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옅은 먹을 천천히 쌓아 올려 형태가 온전히 갖추어지면 꽃이 만개하듯 그때에 비로소 색을 입힌다. 동양에서 먹은 검정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색의 함축을 나타낸다. 즉 일정 시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축적된 시간을 표현한다. 따라서 색과 대비되는 먹은 꽃이 순간이며, 시들어 다시 긴 재생의 시간으로 돌아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 사라진 꽃을 회화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은 일종의 추모이며, 이는 꽃의 생명력을 다른 형태로 지속시키는 것이다. 이는 얼마 전까지 모친의 곁을 지키던 반려 강아지를 그린〈보고싶어! 금돌이〉도 마찬가지이다. 추모로 그려진 대상은 기억의 지속으로 생명이 연장된다.

이러한 사실은 〈어린 고양이〉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동생이 생전에 함께한 고양이와 비슷한 고양이를 화단에서 발견하고 그린 작품이다. 지병이 있던 동생은 길에서 만난 아픈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반려 고양이로 삼았는데, 이 고양이 역시 그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길을 갔다. 작가는 동생이나 그의 반려 고양이를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게 하는 다른 이를 그렸다는 점에서 기억의 이미지로 생명의 연장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억의 이미지는 물질적 죽음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다른 정신적 힘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정신적 힘은 다시 생명의 이름으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고 사랑할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 귄터 블로벨(Günter Blobel, 1936~)은 사람의 나이가 부질없음을 지적하며, “이 세상 모두의 나이는 35억 살”이라 말한다. 이는 현존하는 모든 것이 지구가 생성되며 만들어진 분자들이 흩어지고 모이며 형상만 달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심는 씨는 지난날 흘린 누군가의 눈물이자 땀이며, 훗날 어딘가에 뿌려져있을 흙이다.

생명의 힘은 영원하여 지속될지도 모르지만, 인지적으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끝으로 향해가는 시간 동안만이다. 삶의 끝에 대한 기억들은 비록 슬픔과 두려움이 따르지만 주어진 시간을 조금 더 값지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철학박사 윤여범-

⭐우은오 작가의 개인전 <마더 김여사>전시가 오는 9월 15일 오픈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문의: 아트플러그 연수
070-4466-1665